자연성 직원과 불연성 직원 그리고 가연성 직원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끌리는 대로 글을 읽고 있는 요즘.
공통점을 찾아보니 90대 지성인들의 메시지를 읽고 있더군요. 요즘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성공한 할아버지들의 뻔한 잔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인생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저는 요즘 리더십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직장에서 꽤 오랜 기간 리더 역할을 맡아왔지만, 오래 한다고 해서 잘하는 것도 아니고 고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더군요.
이나모리 가즈오는 경영자 관점에서 직원 유형을 자연성, 불연성, 가연성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표현하는 단어만 다를 뿐 인재 밀도를 강조하는 넷플릭스의 조직문화와도 그 맥이 완벽히 닿아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그 일을 끝까지 해내려면 스스로 타오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 타오르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동시에, 자신이 왜 그 일을 하는지 명백한 목표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이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야’라며 타오를 생각도 하지 않고, 타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뜨거운 열의로 활활 타올라도 함께 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주변의 열기까지도 빼앗아버린다. 이런 얼음 같은 사람을 만나면 의욕이 충만한 사람들도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
기업이든 스포츠팀이든 뜨거운 열의가 없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한 사람 때문에 전체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불연성 인간은 어렵거나 힘든 일을 귀찮아하며, 앞서 가는 것은 남들에게 찍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저 아무 탈 없이 편하게 지내기만을 바란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은 외면하고 굳이 그런 데 신경 쓰려고도 하지 않는다.
‘불연성 직원은 회사에 없어도 된다. 내가 다가가지 않아도 알아서 타오르는 자연성 직원으로 회사를 채우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타오르고 있는 내가 다가갔을 때 마음이 통해 함께 타오를 수 있는 가연성 직원이라도 곁에 두고 싶다!’
불연성 인간이 가득한 회사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교세라가 지금처럼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선 비결은 자연성 직원들이 많아서였고, 그들이 나와 한데 어울려 불을 키웠기 때문이다.
불연성 직원은 스스로 나서지 않는다.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목적과 이유를 알지 못하기에 일의 속도도 더디고, 당연히 일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업무 트러블이 자주 생기는 것도 자기 일에 대한 관심과 의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자연성 직원은 지시를 받기도 전에 스스로 알아서 적극적으로 일을 찾는다. 그를 보는 사람들이 덩달아 신이 날 정도다. 맡은 일은 누구보다 좋아하고, 이루고자 하는 책임감도 대단하다. 설령 일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결코 불평불만하지 않는다. 그런 자연성 직원에 힘입어 가연성 직원들도 함께 타오른다.
“차분히 생각해보라. 당신은 스스로 타오르는 자연성 인간인가, 아니면 불이 닿아도 타지 않는 불연성 인간인가?”
《왜 일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그러나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이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야’라며 타오를 생각도 하지 않고, 타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뜨거운 열의로 활활 타올라도 함께 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주변의 열기까지도 빼앗아버린다. 이런 얼음 같은 사람을 만나면 의욕이 충만한 사람들도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
기업이든 스포츠팀이든 뜨거운 열의가 없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한 사람 때문에 전체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불연성 인간은 어렵거나 힘든 일을 귀찮아하며, 앞서 가는 것은 남들에게 찍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저 아무 탈 없이 편하게 지내기만을 바란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은 외면하고 굳이 그런 데 신경 쓰려고도 하지 않는다.
‘불연성 직원은 회사에 없어도 된다. 내가 다가가지 않아도 알아서 타오르는 자연성 직원으로 회사를 채우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타오르고 있는 내가 다가갔을 때 마음이 통해 함께 타오를 수 있는 가연성 직원이라도 곁에 두고 싶다!’
불연성 인간이 가득한 회사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교세라가 지금처럼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선 비결은 자연성 직원들이 많아서였고, 그들이 나와 한데 어울려 불을 키웠기 때문이다.
불연성 직원은 스스로 나서지 않는다.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목적과 이유를 알지 못하기에 일의 속도도 더디고, 당연히 일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업무 트러블이 자주 생기는 것도 자기 일에 대한 관심과 의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자연성 직원은 지시를 받기도 전에 스스로 알아서 적극적으로 일을 찾는다. 그를 보는 사람들이 덩달아 신이 날 정도다. 맡은 일은 누구보다 좋아하고, 이루고자 하는 책임감도 대단하다. 설령 일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결코 불평불만하지 않는다. 그런 자연성 직원에 힘입어 가연성 직원들도 함께 타오른다.
“차분히 생각해보라. 당신은 스스로 타오르는 자연성 인간인가, 아니면 불이 닿아도 타지 않는 불연성 인간인가?”
《왜 일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또한, 그는 일에 임하는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직장 생활을 하며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왜 일하는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정해진 대로만 움직이면 결과가 나오고 급여가 나오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왜 일하는지,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궁리할 필요가 없다. 눈을 뜨고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일에 쓰고 있지만, 정작 일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일 자체를 싫어하고, 힘든 일은 웬만하면 피하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죽을힘을 다해 일한다’거나 ‘피땀 흘려 일한다’는 말 자체를 무의미하다고 부정하거나 고루한 사고라고 비웃는다. 아니, 오히려 열심히 일하는 이들을 경시한다. 죽을힘을 다해 일하기보다는 주식 투자처럼 편하게 돈 버는 삶을 동경하거나, 하루빨리 벤처기업을 세워 상장한 후 일확천금을 거머쥐고서 이른 나이에 은퇴해 여유롭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당당하게 선언하기도 한다.
한편 일 자체를 두려워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삶을 갉아먹는 고역이라 생각하고, 취직도 하지 않은 채 부모의 그늘 아래서 빈둥빈둥 세월을 보낸다. 왜 사는지, 어떤 사람이 될지 뚜렷한 목표도 없이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마지못해 일하기도 한다. 일할 의지도 없는 무직자나, 능력이 있어도 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만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일에 대한 가치관과 마음가짐의 변화가 초래한 필연적인 결과다. 일하는 것을 필요악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마치 상식이라고 여겨지기까지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일하기 싫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회사에 나간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힘든 일은 좀 피하고, 몸도 마음도 편하게 일하고 싶다. 저녁 시간을 회사 일에 투자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개인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취미 생활을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
경제가 발전하고 일상이 윤택해진 탓인지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아니, 이는 비단 몇몇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이 ‘왜 일하는지’ 생각하지 않으며, 일 자체를 진지하게 대하려 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뿐인 귀한 삶을 사는데,
지금 당신은 정말로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왜 그 일을 하는가?
그 일을 통해 당신은 무엇이 되길 꿈꾸는가?
끌려다녀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일도, 그리고 인생도.”
《왜 일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일 자체를 싫어하고, 힘든 일은 웬만하면 피하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죽을힘을 다해 일한다’거나 ‘피땀 흘려 일한다’는 말 자체를 무의미하다고 부정하거나 고루한 사고라고 비웃는다. 아니, 오히려 열심히 일하는 이들을 경시한다. 죽을힘을 다해 일하기보다는 주식 투자처럼 편하게 돈 버는 삶을 동경하거나, 하루빨리 벤처기업을 세워 상장한 후 일확천금을 거머쥐고서 이른 나이에 은퇴해 여유롭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당당하게 선언하기도 한다.
한편 일 자체를 두려워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삶을 갉아먹는 고역이라 생각하고, 취직도 하지 않은 채 부모의 그늘 아래서 빈둥빈둥 세월을 보낸다. 왜 사는지, 어떤 사람이 될지 뚜렷한 목표도 없이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마지못해 일하기도 한다. 일할 의지도 없는 무직자나, 능력이 있어도 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만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일에 대한 가치관과 마음가짐의 변화가 초래한 필연적인 결과다. 일하는 것을 필요악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마치 상식이라고 여겨지기까지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일하기 싫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회사에 나간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힘든 일은 좀 피하고, 몸도 마음도 편하게 일하고 싶다. 저녁 시간을 회사 일에 투자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개인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취미 생활을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
경제가 발전하고 일상이 윤택해진 탓인지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아니, 이는 비단 몇몇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이 ‘왜 일하는지’ 생각하지 않으며, 일 자체를 진지하게 대하려 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뿐인 귀한 삶을 사는데,
지금 당신은 정말로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왜 그 일을 하는가?
그 일을 통해 당신은 무엇이 되길 꿈꾸는가?
끌려다녀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일도, 그리고 인생도.”
《왜 일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서두에 언급한 90대 세 분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인생은 예측대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운이라는 요소도 많이 따르지만, 그 무엇보다도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끌려가는 삶이 아닌, 내가 중심이 되는 나의 의지가 이끄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