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습관, 책 고르는 기준!

저의 책 읽기 습관은 그냥 무식하게 읽다보니 만들어졌습니다 📚

책 읽기 습관, 책 고르는 기준!
Photo by Road Trip with Raj / Unsplash

학창 시절, 저는 책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습니다.

프로게이머를 꿈꾸던 겜돌이였고, 고등학교 졸업까지 손에 쥔 책이라고는 삼국지 시리즈, 몇 권의 판타지/무협 소설이 전부였죠.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서 군에 입대하고 2년간 이루고 싶은 목표를 세 가지 정했습니다.

당시에 수양록이라는 일기장이 있었는데 맨 앞에 이렇게 적어두었죠.

  • 책 100권 읽기
  • 탄탄한 근육, 몸짱되기
  • 한국어문회, 한자 2급 자격증 따기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세 가지 목표 모두 달성했습니다! :)

제가 있던 부대는 파주에 위치한 ‘백마부대 수색대’였는데, 약 400여 명이 독립된 공간에서 생활했습니다.

인원이 많지 않아서였는지, 동료들이 책에 관심이 없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대에 제대로 된 도서관은 없었습니다.

작은 공간에 책장 서너 개가 전부였고, 책은 200권이 채 안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대부분 휴가를 다녀온 동료들이 읽지 않고 기증한 책들이었죠.

사실 제 취향에 맞는 책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도 목표를 정했으니 손에 잡히는 대로 무식하게 읽었습니다. 잘 읽히지 않아도 꾸역꾸역 읽어나갔습니다. 책이 나를 보는 건지, 내가 책을 보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애매한 책들도 많았죠.

그때 읽었던 책 중 10권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프랭클린 자서전
  2.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읽기
  3. 20대에 하지않으면 안될 50가지
  4.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5. 연금술사
  6. 냉정과 열정사이
  7. 너만의 명작을 그려라
  8. 사랑하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9. 하버드 수재 1600명의 공부법
  10. 상도 (1~5)

연애 소설, 자기계발서, 시집, 문학 등 책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끌리는 대로 읽었습니다. 몰입해서 읽은 책은 소수고, 지금 돌이켜보면 내용도 거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100권을 완독했다는 뿌듯함과 희열은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책을 통해 크게 성장했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따로 있었습니다.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책 읽는 습관이 생겼으며, 특정 장르에 치우치지 않는 잡식성 독자가 되었습니다.

군 제대 후에는 서점 가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남으면 자연스레 서점부터 찾게 되었고, 그렇게 시간이 쌓이다 보니 저만의 책 고르는 습관도 생겼습니다.

저는 보통 이렇게 책을 고릅니다.

  1. 서점을 한 바퀴 돌며 제목과 표지에 끌리는 책을 집는다.
  2. 목차를 훑어본다.
  3. 관심 있는 목차를 펼쳐 읽어본다.
  4. 인상 깊으면 프롤로그를 읽고, 와닿지 않으면 덮는다.
  5. 여러 권 중 사고 싶은 책은 특별히 사진을 찍어두고, 가끔은 즉시 구매한다.

위 과정이 저에게 자연스럽게 체화된 습관인데, 최근에 이동진 평론가의 책을 읽다가 책 고르는 법에 대한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실 저는 닥치는 대로, 무턱대고, 끌리는 대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책을 그렇게 읽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읽다 보면 어느새 좋은 책을 잘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죠.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모든 책을 다 읽어낼 수도 없습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라는 질문도 정말 많이 받습니다. 특정한 책을 읽는 경우가 아닐 때, 별다른 정보 없이 수많은 책들 중에서 나한테 맞는 책, 좋은 책을 찾는 저만의 방법 세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서문을 읽어보는 겁니다. 의외로 서문을 읽는 사람이 드문데 저는 짧은 서문에 저자의 모든 생각이 농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 전체는 잘 썼는데 서문이 별로인 책은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차례를 봅니다. 서문처럼 차례를 살펴보는 경우도 드문 것 같습니다. 차례는 말하자면 건축에서 설계도와 같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례에서 실패한 책이 좋은 책일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훌륭한 책은 당연하게도 모든 페이지가 훌륭합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고를 때 마지막으로 3분의 2쯤 되는 페이지를 펼쳐봅니다.

물리학에 프랙털fractal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부분이 전체를 반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나뭇잎의 모양, 눈〔雪〕의 결정 이런 것이 그 예인데,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분으로 전체를 상당 부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3분의 2 지점을 보는 거냐면, 저자의 힘이 가장 떨어질 때가 바로 그 부분입니다.

무슨 책이든 시작과 끝은 대부분 나쁘지 않습니다. 저도 책을 낼 때 그렇습니다. 원고를 배열할 때 잘 쓴 걸 앞에 둡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앞쪽부터 읽어나갈 테니까요. 한편 맨 뒤부터 슬쩍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맨 뒤에 넣죠.

바로 그래서 3분의 2쯤을 읽으면 저자의 약한 급소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부분마저 훌륭하다면 그 책은 정말 훌륭하니까 그 책을 읽으시면 됩니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개인적으로 마지막 부분이 가장 공감되었습니다.

저도 공동저자로 책을 한 권 출간했습니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쓰다가 중반부터 힘이 빠지는 경험을 했는데 그때 알았습니다. 책을 읽다가 중간에 잘 안 읽히는 이유는 내 집중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저자의 힘이 떨어지는 지점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이동진 평론가의 프랙털 개념에 대한 설명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때 완독에 굳이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며 나의 경험과 생각을 떠올린 것처럼, 한 문장이라도 내 생각을 흔드는 문장을 만났다면 그 책은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라 믿습니다.

곧 추석 연휴가 다가옵니다. 각자 계획이 있겠지만, 이번 연휴에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꺼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