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왜 가격비교가 활성화되지 않았을까?
문득 궁금했다.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커머스와 이용시간을 판매하는 여행 상품은 가격비교가 활발한데 영화는 왜 가격비교가 활성화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여기에 대한 생각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질문해봤다.
1 유통 구조가 달라서 그렇다.
- 실물 상품의 경우 동일 상품이 수많은 공급자들에게 유통된다. 공급자의 협상력에 따라 공급 원가부터 달라질 수 있다.
- 여행 상품의 경우 재고는 시간에 묶여있다. 특정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얼리버드와 라스트미닛 등 다양한 할인 프로모션이 발생한다.
- 반면에 디지털 콘텐츠는 CP가 라이선스를 독점하고 있으며 재고의 개념이 없다. 작품 라이선스를 보유한 회사는 라이선스 유효기간 동안 최대한의 수익을 거두어야 하며, 라이선스 가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락한다.
2 상품 생애주기가 짧다.
- 실물 상품은 20년 전에 먹던 과자가 지금도 잘 팔리는 것처럼 수요가 있는 상품은 계속해서 판매된다.
- 여행 상품은 코로나와 같은 특수 상황을 제외하고는 동일 상품이 계속해서 소비된다.
- 디지털 콘텐츠는 첫 개봉 시점이 상품 가치가 가장 높고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하락한다. 수백억이 들어간 블록버스터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초기 마케팅 성과에 따라 흥행 성패가 갈린다.
3 상품 판매 플랫폼이 제한적이다.
- 1차 시장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멀티플렉스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영화 가격은 표준화되어 있기에 여기서 가격 차별화는 어렵다. 멀티플렉스는 상영관 규모와 시설, 식음료(F&B) 서비스의 차별화로 매출을 극대화해왔다.
- 2차 시장인 TV 영역에서도 3대 통신사 KT, SKB, LGU+가 대부분의 파이를 점유해왔다. 이 시장에서는 콘텐츠 가격을 어느 정도는 컨트롤 할 수 있을거라 생각되는데, 가격을 낮춘다고 타 통신사의 고객이 전이되지 않기에 가끔씩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것 외에는 굳이 가격 플레이를 할 이유가 없다.
- OTT가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OTT의 주력 상품은 정액제 구독이기에 단 건 상품에 대한 가격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4 가격 비교를 할 수 있는 매개체가 없었다.
- 가격 비교를 위해서는 중앙화된 표준 콘텐츠가 필요한데, 모든 플랫폼이 각기 다른 포맷으로 콘텐츠를 관리하다보니 판매되는 모든 상품을 한 곳으로 모을 수가 없었고 당연히 가격비교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시장 흐름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 유튜브가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면서 이제는 구작 콘텐츠도 누가 어떻게 편집을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실제로 방송사는 유튜브에 수많은 클립 영상을 찍어내고 있으며 주요 매출처로 자리잡았다.
- OTT도 수익 극대화를 위해 정액제 모델(SVOD)에서, 단 건 상품 판매(TVOD)를 기본 옵션으로 깔아두고, 광고형 모델(AVOD)을 새롭게 도입하고 있다.
- OTT는 고객 확보를 위해 이전에 없던 다양한 상품 판매를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단 건 결제(TVOD) 상품도 가격 균열이 시작되었다.
키노라이츠는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모든 영화/TV시리즈에 대해 표준화된 콘텐츠를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플랫폼의 정액제, 대여, 구매 정보도 함께 제공한다.
업계에 있으면서도 주로 정액제 콘텐츠에만 관심이 있어서 대여/구매 상품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이 글을 쓰면서 확인해보니 단 건 결제(TVOD) 상품도 가격 균열이 시작되었고 유튜브가 가장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특성상 콘텐츠를 구매할 때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기가 망설여지는데 유튜브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모든 플랫폼, 모든 디바이스, 모든 통신사의 첫 화면에 입점하고있다. 게다가 주요 작품의 가격도 가장 저렴하다.
구글은 2024년 1월 구글플레이 무비&TV 사업을 종료하고 유튜브로 흡수 합병했는데 기존에 판로를 열어두었던 모든 곳으로 구글플레이 콘텐츠 커버리지를 넓혔다.
이제 통신사가 점유했던 IPTV 시장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삼성, LG를 중심으로 스마트TV는 하드웨어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탈바꿈하고있으며,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글로벌 기업들이 콘텐츠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조금씩 잠식해가고 있다.
국내 OTT 플랫폼들도 그들만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각자만의 해자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막대한 자본력을 따라가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글로벌 플랫폼의 경우 오리지널 콘텐츠가 제대로 터지면 전 세계적인 구독자 증가로 투자금 이상을 회수할 수 있지만, 국내 콘텐츠는 대부분 국내 고객으로 한정되어 있다보니 투자금 회수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가격비교로 시작해서 샛길로 빠졌는데, 정리해보면 그 동안의 디지털 콘텐츠는 공급자, 플랫폼, 소비자 시장이 정체되어 있다보니 가격 경쟁을 위한 트리거가 형성되지 않았다.
그나마, 영화관에서 2차 시장으로 넘어갈 때가 소비자에게 가격 메리트가 가장 큰 시점인데 콘텐츠는 제작/수입/유통사가 라이선스를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다보니 굳이 출혈 경쟁을 만들 이유가 없다.
반대로, 플랫폼 입장에서는 콘텐츠 생애주기의 앞단에서 협상력을 가져갈 수 있다면 고객 유치를 위한 기회를 엿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쿠팡플레이의 모든 시도가 이해가 된다. MG를 크게 주고 영화관에서 다이렉트로 콘텐츠를 가져오고, 오리지널 콘텐츠는 고급화 전략을 유지하고, 스포츠를 독점 중계 하는 과정들이 신규 고객을 확보하면서 자신들의만의 해자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결국 이 시장은 자본력과 커버리지의 싸움이다.
그게 아니라면 SPOTV, 라프텔, 위버스처럼 고유 영역을 확실히 점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