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은 떠나도 팬은 떠나지 않는다
책 <THICK data> 를 읽으며 '팬덤'에 관하여 떠오른 생각들.
나는 직장 생활 5년차 쯤부터 온라인 활동을 시작했다.
웹 기획자로 시작해 5년차까지는 거의 매일을 가장 늦게까지 일하고 가장 일찍 출근하는 소위 갈아넣는 생활을 유지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회사의 모든 성과는 윗분들께 돌아가고 정작 나는 합당한 대우를 못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는 동기들보다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학력도 커리어도 내세울만한 건 없었다.
이런 고민으로 가득했던 시기에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가수, 배우가 아무리 노래를 잘하고 연기를 잘해도 알려지지 못하면 소외되고, 실력이 부족해도 알려지면 그 이상의 대우를 받는다는 걸 보면서 스스로를 알리는 것도 경쟁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시점부터 내가 경험하고 공부한 것들을 콘텐츠로 만들고 공유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러한 콘텐츠 제작 활동은 온/오프라인 강의로 연결되었다.
자세한 기록은 about 페이지 에서 볼 수 있다.
사실, 나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남들 앞에 서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표현보다는 두려워했다는 표현이 더 맞다. 발표 자리에 서면 항상 식은 땀이 흐르고 머리가 멍해지며 말문히 막히는 일들이 부지기수였고 이러한 성격은 발표, 리뷰, 미팅 자리가 많았던 내 포지션에서는 아킬레스건 중 하나였다.
이런 성향을 극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소규모 스터디부터 시작해 발표나 강의 기회가 주어지면 두려워도 꾸준히 도전했다. 유튜브에 기획/PM 관련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한 것도 내 실력을 조금 더 알리고 싶었고, 더불어 발표 스킬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유튜브 초기 영상들은 굉장히 부끄럽고 소심한 모습들이 그대로 보여진다. 이러한 콘텐츠 생산 활동들은 어느새 나의 취미의 영역이 되었고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결과로는 유튜브 구독자 1.8만명, 인프런 수강생 8,000명, 페이스북 그룹 5,000명, 브런치 구독자 3,900명을 모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숫자들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숫자는 모았지만 찐팬은 없었다.
가장 현타가 왔던 순간이 작년 이맘때쯤 브런치 글을 발행할 때였다. 글을 발행하면 거의 동시에 여러 개의 좋아요가 눌렸는데 글을 읽지도 않고 좋아요가 눌린게 분명했다.
누가 반응했나 궁금해서 상대방 프로필로 넘어가보면 내 분야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인 경우도 많았다. 글이 좋아서 누른게 아니라 품앗이 좋아요였다. 나도 상대방 글에 반응해 줘야 할 것 같은 부채의식이 생겼고 그래서 브런치 활동을 접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그룹도 마찬가지였다. 구독자 숫자는 올라가지만 내가 이걸 왜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서 2~3년 전부터 활동을 접었다.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는 것에 대해 흥미를 잃었던 시기였다. 물론 회사일이 바쁘기도 했다.
그래서 최근 몇 년은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글 보다는 스스로의 실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책 한 권을 읽어도 더 깊게 읽고,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들은 온전히 담아 나만의 개인노트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3세대 노트 앱이라고 불리는 RoamResearch, Obsidian에 푹 빠졌던 시간이었다.
이런 시기를 지나서 올해부터 다시 블로그를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회수나 공유에 목메이기 보다는 내가 만드는 콘텐츠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반응해주는 사람들. 소수여도 좋으니 찐팬 모으기!로 관점을 바꾸고 뉴스레터 기반의 블로그로 옮겨왔다.
새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구독자 인게이지먼트(오픈률, 체류시간, 세션수)를 가장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 오픈율이 낮은 멤버는 구독자 목록에서 삭제해가면서 진짜 구독자를 관리해보고 있다. 올해의 목표 중 하나로 진짜 구독자 대상으로 <업무 생산성 2배 향상 노하우>를 주제로 오프라인 강의를 계획중이다.
'팬덤'이라는 키워드로 시작해서 사적인 이야기가 길어졌다. 개인적 이야기와는 별개로 키노라이츠 플랫폼 안에서도 팬덤을 이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레슨 런을 했고 다음 스텝을 준비중이다.
팬덤은 사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있는 무언가로부터 형성된다.
사람과 캐릭터에 빠지기도 하고,
- 영향력 있는 개인 (전문가, 인플루언서)
- 셀럽 (스포츠 스타, 배우, 가수, 아이돌)
- 명확한 캐릭터 (웹소설/웹툰 주인공, 버추얼 아이돌)
브랜드에 빠지기도 한다.
- 각종 명품 브랜드
- 애플, 디즈니, 레고, 벤츠, BMW, 나이키 ..
THICK data에서 인상깊었던 문장들이다.
최근 들어 기업들이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말이다. 단골이 습관적으로 또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로 특정 브랜드나 제품을 선호하여 반복 구매하는 집단이라면 팬은 브랜드의 신념과 가치에 공감하고 이를 철저히 내면화한 집단이다.
마케팅팀에서 벌이는 공식적인 홍보 활동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파급력과 영향력이 더 강력한 것은 팬들이 어떠한 경제적 보상도 바라지 않고 순수한 팬심으로 만들어 유포하는 소위 ‘팬 메이드’ 콘텐츠다.
단골이 품질이나 가격의 변화, 경쟁사 프로모션 등 다양한 이유로 선호 제품을 갈아치운다면 팬은 때때로 실망하고 불만을 느끼더라도 브랜드와의 끈끈한 유대를 잃지 않는다. 팬에게 브랜드란 같은 취향과 신념을 공유하는 공동체이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주고 표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제품 후기를 작성하면 포인트를 준다거나 자사의 SNS 계정을 팔로우하면 할인 쿠폰을 제공한다는 방식으로는 팬덤을 형성하지 못한다. 소비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를 ‘거래’가 아닌 ‘관계’로 만들려면 쿠폰 한 장이라도 손수 작성한 메모와 함께 건네는 방식으로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감동을 안겨 줄 필요가 있다.
브랜드 팬덤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애플처럼 강력한 팬덤이 자생으로 생겨난 경우는 더욱 그렇다. 아마도 애플의 팬덤은 혁신적인 기술, 스티브 잡스라는 CEO의 스타성과 쇼맨십 등 다양한 요소가 적절한 시기에 시너지 효과를 낸 결과물일 것이다. 따라서 모든 기업에서 애플과 같은 종교적 팬덤이 자발적으로 불붙길 기대할 수는 없다.
왜 그들은 폐쇄적인 AS 정책과 크고 작은 불편함에도 애플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잃지 않고 애플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기꺼이 지갑을 여는 걸까. 왜 그들은 자신을 ‘애플 유저’로 규정하는데 일종의 자부심마저 느끼는 걸까.
“단골은 떠나도 팬은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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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총 5부로 구성된 THICK data 마지막 리뷰다.
바로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액션 아이템은 적지만 ‘생각해볼 거리'가 필요한 리더 분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는 본질적인 메세지들을 가득 담고있다.
독서노트 <THICK data> 시리즈 (5)
- 단골은 떠나도 팬은 떠나지 않는다
- 쓸모없는 데이터를 입력하면 쓸모없는 데이터가 출력된다
- 소비자는 언제나 진실만 말하지 않는다
- 파이형 인재와 통섭형 인재
- 측정할 수 있는 것이 항상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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